길을 걷다-금정산 둘레길] <3> 법천사~호포역 임도 입구 9㎞ |
낙동강 풍경 보며 걷는 한발 한발에 봄기운 '솔솔' |
매서운 겨울은 매몰찼고, 매정했다. 그럴지언정 봄은 올 게다. 지금 금정산 둘레길에는 봄이 움트고 있다. 아직 지천으로 깔린 건 아니다. 대신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봄기운이 발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둘레길 3차 구간은 '길 맛'을 제대로 음미하는 단출한 코스다. 흙, 자갈, 시멘트 길 뒤범벅이다. 살얼음 낀 낙동강을 보며 가는 길이라 심심하지 않다. 둘레길을 막 걸으려는 초보한테도 수월한 길이다. 3~4푼 능선을 따라 걷기에 여차하면 금정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길과 산행을 동시에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흙·자갈길 섞여 제대로 된 '길 맛' 즐겨
탁자·개 머리·한반도 모양 무명바위 많아
나무로 만든 '송싯골 쉼터'서 노을 만끽
경남 양산시 동면 금산리 법천사 앞에서 첫걸음을 뗐다.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법천사는 아직 전통사찰로 등록되지 않았다. 이 절의 석조여래좌상은 지난해 3월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93호로 등록됐다. 높이 80㎝, 너비 44㎝의 이 불상은 돌에 금박을 입히고 옻칠을 했는데, 17~18세기 조선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둘레길의 언 땅이 녹고, 새싹이 피고, 햇볕이 자애롭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절 대웅전 뒤편에 산신각이 있는데, 수백 년 된 소나무가 계단 앞에 버티고 앉았다. 범상치가 않다. 가람은 200평 남짓하다. 주변의 화강암 바위들이 신장처럼 둘러앉았다.
법천사에서 5분 정도 시멘트 포장 임도를 걸었다. 내리막이었다. 갈림길을 만났다. 왼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계속 직진하면 양산 금산리 방면으로 나간다.
금산리의 '금' 자는 원래 '거문고 금(琴)'이었다. 마을을 감싼 냉정천과 고천천의 물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들려서다. 그러다 지난 1914년 '산이 많아 살기 좋은 비단 같은 곳'이란 뜻으로 '비단 금(錦)'으로 바뀌었다. 마을이 개명 덕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15분 정도 진행했다. 또다시 갈림길을 만났다. 왼쪽 능선은 금정산 장군봉(734.5m), 오른쪽 내리막 능선은 금산리 금산아파트로 빠지는 탈출로다.
장군봉은 억새평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8시께 청룡동 일대 8푼 능선에서 불이 나 소나무, 참나무 등 4천900여㎡(약 1천500평)를 태워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길 왼쪽 능선에 바위가 알차게 박혔다. 덩치가 상당하다. 탁자 모양, 개 머리 모양, 한반도 모양 등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꽤 유명한 바위들은 이름이 있겠지만, 둘레길 주변의 평범한 바위한테는 이름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여 우리는 '무명바위 1호, 2호' 하며 이름을 붙였다. 만약 '바위 이름 작명소'가 생긴다면 금정산 둘레길 바위를 보여주고 싶다.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모양의 바위가 나타났다. 둘레길 일행 중 하나가 '제주 돌하르방을 닮았다'고 외쳤다. 김춘수의 시에서 '꽃이라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됐듯', 그 순간 이 바위도 '돌하르방 바위'로 정해졌다.
5분 정도 걸었다. 산정에서 모인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타났다. 물이 맑고 청량해 보였다. 계곡 옆에 두 개의 경고판이 서 있다. '사유지로서 무단 출입을 삼가 달라', '가산마을 주민 식수원이니 누구를 막론하고 냇가의 출입을 금한다'고 적혔다. 경고판은 세속과 세인에게 '제발 손대지 말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금정산, 영남알프스 둘레길 기사가 나간 뒤 일부 둘레길 순례단이 남의 땅을 함부로 밟아 '주민들의 항의가 몇 차례 있었다'는 말을 행정기관으로부터 들었다. 길을 걷는 건 자유이겠으나, 삼갈 때는 삼가는 게 사람의 도리이겠다.
15분 정도 순탄한 길을 걸었다. 또다시 돌무더기가 흩어진 넉넉한 쉼터를 만났다. 몇 분 동안 쉬었다. 폭양의 계절에 다시 찾는다면 차가운 돌 기운만으로 더위가 달아날 것 같다.
자갈 임도와 시멘트 임도를 번갈아 밟았다. 둘레길 팀 뒤로 금정산 하늘 리지가 벽공에 창을 꽂듯 솟구쳐 있다. '골산(암석이 많은 산)'의 진면목을 한눈에 드러내 보이는 유명한 암릉이다.
임도 곳곳에 이정표가 잘 박혀 있다. '호포 매운탕 마을' 이정표를 만났다. 이 마을은 3차 구간 종점인 부산도시철도 2호선 호포역 부근에 있다. 민물 매운탕, 생선회·생선찜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 수십 군데 있다. 예전 금정산이나 천태산 산꾼들이 산행을 마치고 소주 한 잔에 몸을 녹이고 가던 곳이다.
5분 정도 지나 '금정산 정상'과 '호포 새 동네' 이정표가 나왔다. 푯말에서 금정산 정상까지 1.7㎞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산리 마애석불입상을 볼 수 있다.
10분 정도 걸었다. 나무로 지은 '송싯골(송짓골) 쉼터'가 나왔다. 예전에 소나무가 많아,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송진을 채취했다. 쉼터에 앉아 멀리 있는 낙동강을 봤다. 강 옆에 굴착기와 대형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강 위로 얼음덩이가 떠다니고 있었다. 저녁 노을이 겨울 강을 비췄다. 양산시 전역이 누렇게 물들기 시작했다.
낙동강 풍경을 오른쪽 허리춤에 끼고 아래로 걸었다. 배나무 과수원을 지나자 시멘트 임도를 만났다. 주인 모르는 8폭 산수화 병풍이 길 옆에 서 있었다. 세상의 산들이 8폭에 담겨 있었다.
5분 정도 걸어 종점인 35번 국도와 접한 호포역 임도 입구를 만났다. 쇠로 만든 차량 차단기가 설치돼 있다. 9㎞, 3시간 정도 걸렸다. 종점 건너편에 부산 북구청이 조성한 금곡꽃박물관이 있다. 구청에 물으니 '올 봄에 느티나무, 장미, 능소화 등 나무 2천500그루를 심는다'고 했다.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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