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금정산 둘레길

[길을 걷다] 금정산 둘레길-1 (부산일보 2011.01.01/06)

원태산 2011. 1. 13. 13:24

 

늘 익숙해서 몰랐는데… 우리 동네에 아름다운 길이 있었네~

 

다시 길을 걷습니다. 새해 새 마음으로 '훅~' 긴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길을 나섭니다.

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입니다. 볼에 와 닿는 겨울 된바람은 얼음장같이 맑고 투명하여, 세간의 잡념들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들메끈을 고쳐 매고 금정산둘레길을 갑니다. 늘 익숙하여,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길입니다. 내 집 앞을 지나는 길이었고, 아이들 방학 숙제를 위해 식물 채집을 하러 갔던 길이기도 했습니다.

꼭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어떻습니까. 산은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의 마을이 되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산과 잇닿아 있기에 오래 전부터 산과, 사람들의 마을은 하나였습니다.

그 익숙하고, 가까운 금정산둘레길을 이제 부산일보가 걸어봅니다.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길인 금정산둘레길을 먼저 소개하는 것에 이어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운 둘레길을 찬찬히 걸어보는 일 등도 계속해 나갈 작정입니다.


총 90㎞, 사람들 애용하는 산길
인위적 개발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
걸으면서 욕심 버리는 '무욕의 길'



·금정산, 부산의 어머니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름다운 금정산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옵니다. '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 큰 돌이 있는 데 그 위에 샘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가 7촌 가량으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 마리 금빛 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논다.'

그래서 금빛 샘이 있는 산이라고 금정산(金井山)이라고 부른답니다.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는 고당봉(姑堂峰·801.5m)입니다. 금정산 고당봉 바로 아래에 보면 고모당이라는 당집이 수백 년 동안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모당은 고모산신, 즉 할미산을 모신 당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산신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리산 성모상이나, 한라산의 설문대할망이 다 그렇듯, 금정산 할미도 인간 세상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다주는 오랜 민간신앙을 반영하는 증표입니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갈래쳐 낙동정맥이라는 큰 산줄기를 생성합니다. 낙동강의 동쪽에 있고, 동해의 서쪽에 자리잡아 내륙과 동해를 나누는 분수령이 됩니다. 그 낙동정맥이 크게 이어져 마침내 금정산에서 한번 솟구치고, 몰운대에서 바다와 만납니다.

금정산은 그렇게 백두의 기세가 둥지를 튼 곳으로 대륙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보듬다

금정산은 부산의 정신을 태동한 산이라고 말합니다. 금정산성에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금정산 정신은 곧 불굴의 의지와 강건한 기운을 자랑하는 '부산의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산의 둘레는 동쪽으로는 부산 금정구 장전동과 남산동이고, 서쪽으로는 북구 화명동과 금곡동, 남쪽으로는 동래구 온천동이며, 북쪽으로는 경남 양산시 동면으로 뻗어 있습니다. 백양산과 금정봉(쇠미산)이 그 뿌리가 다르지 않아 부산진구와 사상구까지 확장돼 있으니 가히 부산의 든든한 기둥임에 틀림없습니다.

금정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인 범어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라가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창건한 범어사는 국청사, 해월사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내는 훌륭한 수호신장이었습니다.

산세가 아름다운 금정산은 다양한 동식물을 보듬고 있습니다. 고산습지에는 하늘산제비난, 방울고랭이가 자생하고 있고, 끈끈이주걱과 땅귀개 같은 식충식물이 사는 등 101과 271속 538종의 식물들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는 물론 붉은배새매와 동박새 등 12목 34과 89종의 조류가 사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멧돼지와 고라니, 삵 등 포유류도 24종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나직하게 둘레를 걷다

길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늘 평탄하고 쉬운 길만 있다면 인생이 무에 그리 재미있냐고 이야기합니다. 실은 힘들지 않은 탄탄대로만 있는 길이 좋긴 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진창도 만나고, 끊어진 길에서 헤매기도 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높은 곳을 지향하여 정상에 서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먼저 앞서가거나, 느릿하게 걸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둘레길은 어쩌면 낮은 곳으로 향하고, 욕심을 버리는 무욕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금정산둘레길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여러 날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때로는 가시덤불에 긁히고, 한참을 갔던 길이 끝이 막혀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쉽게 시작한 길이 너무 가팔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녀온 길을 정리하니 90㎞. 우리네 거리로 환산하면 225리입니다. 마을도 지나고, 구멍가게 앞을 지나기도 합니다. 장끼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숲길도 있고, 오리나무가 무성한 오솔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애용하는 산길이어서 등산객 구경이 즐거운 길도 있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재개발지역을 지나기도 합니다. 모든 길이 예쁘지만은 않지만, 그것도 인생길입니다.

부산일보는 작은 리본(사진) 하나를 달아 걷는 이들의 길잡이로 삼겠습니다. 올 한 해 금정산둘레길을 부산일보와 함께 걸어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글·사진=이재희·전대식 기자 jaehee@busan.com

 

[길을 걷다] 금정산 둘레길 <1> 범어사~ 양산 동면초등교 8.7㎞
지장암 뒤편 전국 사찰 이름 새긴 돌 200여 개 '빼곡'

 

[길을 걷다] 지장암 뒤편 전국 사찰 이름 새긴 돌 200여 개 '빼곡'
[길을 걷다] 지장암 뒤편 전국 사찰 이름 새긴 돌 200여 개 '빼곡'
  '이제 걷습니다.' 금정산 둘레길 90여㎞를 걷는 첫발을 드디어 뗐다. 1차 구간의 기점인 범어사 주차장에서 10여 분을 올라와 산길을 걸었다. 겨울 숲은 청량했다. 칼바람이 불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18세기의 선비 신경준(1712~1781)은 "사람의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지는데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설했다. 그렇다. 길에 주인이 어디 있나? 너와 나, 우리가 가면 곧 길일 터. 시인 김춘수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 것처럼 길도 그 주인을 찾을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90여㎞의 금정산 둘레길을 걷기로 한 우리는 이 길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길을 걷는 동안 그저 단순하고 평범한 길, '날것' 그대로의 순박하고 담박한 면을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 다만 그 길의 주인을 찾아주는 노력은 마다하지 않겠다.

평일 오전에도 걷는 주부들 많아
'까치 손바닥' 닮은 작장마을 눈앞
산허리 감싸는 'S라인' 길 이어져

산행은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1차 구간의 들머리로 범어사 주차장에서 계명봉 기슭길로 정했다. 너무 평범한 들머리였다. '금정산 둘레길' 리본을 나무에 매달았다.
10분 정도 걸으니 비석골에 이르렀다. 비석이 많아서 붙은 이름인데, '부사 정공현 덕영세불망비'(1872년) 등 5기의 비석이 도열했다. 비석은 조선시대 동래부사 등이 피폐한 백성과 사찰에 베푼 은덕과 공을 기려 범어사가 세웠다.
비석골을 지나 차나무가 듬성듬성 땅에 박힌 오솔길을 가다 지장암 뒤편에 다다랐다.
길가에서 이상한 돌무덤을 만났다. 어림잡아 200개는 넘는 돌에 절 이름이 빼곡했다. 지나가는 산객에게 물어도 연유를 몰랐다. 구청도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장암의 한 신도가 신심에서 발원해 만든 탑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봤다.
평평하고 싱거운 길이 계속됐다. 잠시 뒤 너비 3m, 높이 2m 정도 큰 바위를 발견했다. '金魚洞天(금어동천)' 바위이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동천이라 하는데, 신선이 산다. 하여 '금어동천'은 신선과 금정산의 금어가 함께 노니는 신성한 장소였다. 주변에 약수터가 있다.
주민체육시설산림욕장을 통과해 대밭을 지나간다. 사유지라 함부로 들어가선 안 된다. 119 안내 이정표에서 사송리 방향으로 향했다. 잇따라 '까치의 손바닥'을 닮은 작장마을, '큰 용의 형상을 띤' 대룡마을, '사슴 노루가 많았다'는 녹동마을 갈림길을 만났다. 갈림길에서 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면 언제든지 둘레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평일 오전인데도 둘레길에 사람들이 제법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 길을 걷는다는 주부 서선옥(52) 씨와 정옥순(50) 씨.
평생지기인 두 사람은 "등산이 아니라 걷는다는 생각으로 둘레길을 찾는다. 둘레길은 부담이 없어 여성들에게 딱"이라고 말했다.
순탄한 길이 이어졌다. 희락원 갈림길에서 또다시 경고 간판과 맞닥뜨렸다. '이곳은 녹동마을과 희락원(고아원)의 유일한 식수이다. 여기가 아니면 먹을 물이 없다. 절대로 취사하거나 손, 발 등을 씻지 말라.' 등산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읽었다.
여기서부터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났다. 그래도 산허리를 질러가는 길은 유순했다. 길은 'S라인' 꼴로 자주 다가왔다.
이 라인 끝과 계명천 골짜기가 만나는 지점에서 봉분이 능선을 따라 일렬로 누워있다. 어느 풍수가가 장군봉의 기운을 묘에 담으려고 배치한 듯싶다. 묘지 옆에 목 잘린 문인석이 서 있었다.
성림농장과 거북이 약수터를 돌아 녹원 수목원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2시간 40분.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부산지역 ROTC(학군단) 5기들의 모임인 '기우회'의 쉼터다.
이날 권혁동 회원(부산시인협회 회장)은 '새해'라는 시를 읊었다. 시는 '삶은 생각이 머무는 곳에 있고/생각은/눈길 머무는 곳에 있으니/더불어 새해를 볼 일이다'라고 끝났다.
조금 더 가서 녹원수목원을 만났다.
한때 유명한 유원지였는데, 지금은 폐쇄됐다. 주변 민가들도 정부의 개발정책에 따라 마을을 떠났다. 버려진 집마다 잡초가 피었고, 쓰레기가 빈터에 가득했다.
사송리 사배마을 못 둑에서 외송마을 회관까지의 2㎞ 구간은 개활지였다. 길은 평탄하고 미끈했다. 왼편에 장군봉이 보였다. 포도밭과 파밭을 지나갔다.
외송마을 회관에서 예닐곱 명의 주민들이 곁불을 쬐고 있었다. 이 일대는 지난 2000년 개발계획이 나오면서 주민들이 떠나 지금은 30여 가구만 산다.
갈 데가 없고 자란 터전을 떠나기 싫어 남은 사람들이다. 정작 개발이 몇 년째 지연되면서 마을은 방치됐다. 60대 한 노인이 "개발하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빨리 나서 달라.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의 어두운 배웅을 뒤로한 채 일행은 첫 둘레길 산행의 종점인 양산시 외송리 동면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첫날 거리는 8.7㎞. 쉬고 밥 먹는 시간을 빼면 4시간 정도 걸렸다.
전대식 기자 pro@busan.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영상=김상훈 VJ

어떻게 가나?

금정산 둘레길 1차 구간이 시작되는 범어사 주차장에 가려면 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 5, 7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5분 정도 이동해 범어사행 90번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시내버스는 148·37·49-1·80-1·90·301·50·50-1·1002번을 타고 범어사 정류소에서 하차해 도보로 이동하거나 90번 마을버스를 탄다.

자가용을 타고 노포동에서 올 때는 검문소를 지나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고, 연결된 사거리와 삼거리에서 계속 우회전해 5분가량 직진한다.

남산동 방면에서 자가용을 몰고 올 때는 범어사 지하철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이어지는 사거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한다. 1차 구간의 종점인 양산시 동면초등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외송마을 정류소에서 12번(부산~언양), 12-1번(부산~양산시외터미널), 57번(영산대~시외터미널), 132번(부산~양산~물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자가용으로는 지방도 1077호선을 이용하면 된다. 전대식 기자

인터넷용 금정산 둘레길 표고
인터넷용 금정산 둘레길 1차구간 구글어스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