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익숙해서 몰랐는데… 우리 동네에 아름다운 길이 있었네~
다시 길을 걷습니다. 새해 새 마음으로 '훅~' 긴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길을 나섭니다.
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입니다. 볼에 와 닿는 겨울 된바람은 얼음장같이 맑고 투명하여, 세간의 잡념들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들메끈을 고쳐 매고 금정산둘레길을 갑니다. 늘 익숙하여,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길입니다. 내 집 앞을 지나는 길이었고, 아이들 방학 숙제를 위해 식물 채집을 하러 갔던 길이기도 했습니다.
꼭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어떻습니까. 산은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의 마을이 되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산과 잇닿아 있기에 오래 전부터 산과, 사람들의 마을은 하나였습니다.
그 익숙하고, 가까운 금정산둘레길을 이제 부산일보가 걸어봅니다.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길인 금정산둘레길을 먼저 소개하는 것에 이어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운 둘레길을 찬찬히 걸어보는 일 등도 계속해 나갈 작정입니다.
총 90㎞, 사람들 애용하는 산길
인위적 개발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
걸으면서 욕심 버리는 '무욕의 길'

·금정산, 부산의 어머니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름다운 금정산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옵니다. '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 큰 돌이 있는 데 그 위에 샘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가 7촌 가량으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 마리 금빛 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논다.'
그래서 금빛 샘이 있는 산이라고 금정산(金井山)이라고 부른답니다.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는 고당봉(姑堂峰·801.5m)입니다. 금정산 고당봉 바로 아래에 보면 고모당이라는 당집이 수백 년 동안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모당은 고모산신, 즉 할미산을 모신 당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산신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리산 성모상이나, 한라산의 설문대할망이 다 그렇듯, 금정산 할미도 인간 세상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다주는 오랜 민간신앙을 반영하는 증표입니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갈래쳐 낙동정맥이라는 큰 산줄기를 생성합니다. 낙동강의 동쪽에 있고, 동해의 서쪽에 자리잡아 내륙과 동해를 나누는 분수령이 됩니다. 그 낙동정맥이 크게 이어져 마침내 금정산에서 한번 솟구치고, 몰운대에서 바다와 만납니다.
금정산은 그렇게 백두의 기세가 둥지를 튼 곳으로 대륙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보듬다
금정산은 부산의 정신을 태동한 산이라고 말합니다. 금정산성에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금정산 정신은 곧 불굴의 의지와 강건한 기운을 자랑하는 '부산의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산의 둘레는 동쪽으로는 부산 금정구 장전동과 남산동이고, 서쪽으로는 북구 화명동과 금곡동, 남쪽으로는 동래구 온천동이며, 북쪽으로는 경남 양산시 동면으로 뻗어 있습니다. 백양산과 금정봉(쇠미산)이 그 뿌리가 다르지 않아 부산진구와 사상구까지 확장돼 있으니 가히 부산의 든든한 기둥임에 틀림없습니다.
금정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인 범어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라가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창건한 범어사는 국청사, 해월사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내는 훌륭한 수호신장이었습니다.
산세가 아름다운 금정산은 다양한 동식물을 보듬고 있습니다. 고산습지에는 하늘산제비난, 방울고랭이가 자생하고 있고, 끈끈이주걱과 땅귀개 같은 식충식물이 사는 등 101과 271속 538종의 식물들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는 물론 붉은배새매와 동박새 등 12목 34과 89종의 조류가 사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멧돼지와 고라니, 삵 등 포유류도 24종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나직하게 둘레를 걷다
길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늘 평탄하고 쉬운 길만 있다면 인생이 무에 그리 재미있냐고 이야기합니다. 실은 힘들지 않은 탄탄대로만 있는 길이 좋긴 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진창도 만나고, 끊어진 길에서 헤매기도 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높은 곳을 지향하여 정상에 서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먼저 앞서가거나, 느릿하게 걸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둘레길은 어쩌면 낮은 곳으로 향하고, 욕심을 버리는 무욕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금정산둘레길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여러 날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때로는 가시덤불에 긁히고, 한참을 갔던 길이 끝이 막혀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쉽게 시작한 길이 너무 가팔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녀온 길을 정리하니 90㎞. 우리네 거리로 환산하면 225리입니다. 마을도 지나고, 구멍가게 앞을 지나기도 합니다. 장끼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숲길도 있고, 오리나무가 무성한 오솔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애용하는 산길이어서 등산객 구경이 즐거운 길도 있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재개발지역을 지나기도 합니다. 모든 길이 예쁘지만은 않지만, 그것도 인생길입니다.
부산일보는 작은 리본(사진) 하나를 달아 걷는 이들의 길잡이로 삼겠습니다. 올 한 해 금정산둘레길을 부산일보와 함께 걸어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글·사진=이재희·전대식 기자 jaehee@busan.com

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입니다. 볼에 와 닿는 겨울 된바람은 얼음장같이 맑고 투명하여, 세간의 잡념들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들메끈을 고쳐 매고 금정산둘레길을 갑니다. 늘 익숙하여,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길입니다. 내 집 앞을 지나는 길이었고, 아이들 방학 숙제를 위해 식물 채집을 하러 갔던 길이기도 했습니다.
꼭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어떻습니까. 산은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의 마을이 되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산과 잇닿아 있기에 오래 전부터 산과, 사람들의 마을은 하나였습니다.
그 익숙하고, 가까운 금정산둘레길을 이제 부산일보가 걸어봅니다.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길인 금정산둘레길을 먼저 소개하는 것에 이어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운 둘레길을 찬찬히 걸어보는 일 등도 계속해 나갈 작정입니다.
총 90㎞, 사람들 애용하는 산길
인위적 개발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
걸으면서 욕심 버리는 '무욕의 길'

·금정산, 부산의 어머니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름다운 금정산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옵니다. '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 큰 돌이 있는 데 그 위에 샘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가 7촌 가량으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 마리 금빛 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논다.'
그래서 금빛 샘이 있는 산이라고 금정산(金井山)이라고 부른답니다.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는 고당봉(姑堂峰·801.5m)입니다. 금정산 고당봉 바로 아래에 보면 고모당이라는 당집이 수백 년 동안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모당은 고모산신, 즉 할미산을 모신 당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산신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리산 성모상이나, 한라산의 설문대할망이 다 그렇듯, 금정산 할미도 인간 세상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다주는 오랜 민간신앙을 반영하는 증표입니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갈래쳐 낙동정맥이라는 큰 산줄기를 생성합니다. 낙동강의 동쪽에 있고, 동해의 서쪽에 자리잡아 내륙과 동해를 나누는 분수령이 됩니다. 그 낙동정맥이 크게 이어져 마침내 금정산에서 한번 솟구치고, 몰운대에서 바다와 만납니다.
금정산은 그렇게 백두의 기세가 둥지를 튼 곳으로 대륙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보듬다
금정산은 부산의 정신을 태동한 산이라고 말합니다. 금정산성에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금정산 정신은 곧 불굴의 의지와 강건한 기운을 자랑하는 '부산의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산의 둘레는 동쪽으로는 부산 금정구 장전동과 남산동이고, 서쪽으로는 북구 화명동과 금곡동, 남쪽으로는 동래구 온천동이며, 북쪽으로는 경남 양산시 동면으로 뻗어 있습니다. 백양산과 금정봉(쇠미산)이 그 뿌리가 다르지 않아 부산진구와 사상구까지 확장돼 있으니 가히 부산의 든든한 기둥임에 틀림없습니다.
금정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인 범어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라가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창건한 범어사는 국청사, 해월사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내는 훌륭한 수호신장이었습니다.
산세가 아름다운 금정산은 다양한 동식물을 보듬고 있습니다. 고산습지에는 하늘산제비난, 방울고랭이가 자생하고 있고, 끈끈이주걱과 땅귀개 같은 식충식물이 사는 등 101과 271속 538종의 식물들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는 물론 붉은배새매와 동박새 등 12목 34과 89종의 조류가 사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멧돼지와 고라니, 삵 등 포유류도 24종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나직하게 둘레를 걷다
길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늘 평탄하고 쉬운 길만 있다면 인생이 무에 그리 재미있냐고 이야기합니다. 실은 힘들지 않은 탄탄대로만 있는 길이 좋긴 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진창도 만나고, 끊어진 길에서 헤매기도 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높은 곳을 지향하여 정상에 서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먼저 앞서가거나, 느릿하게 걸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둘레길은 어쩌면 낮은 곳으로 향하고, 욕심을 버리는 무욕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금정산둘레길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여러 날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때로는 가시덤불에 긁히고, 한참을 갔던 길이 끝이 막혀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쉽게 시작한 길이 너무 가팔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녀온 길을 정리하니 90㎞. 우리네 거리로 환산하면 225리입니다. 마을도 지나고, 구멍가게 앞을 지나기도 합니다. 장끼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숲길도 있고, 오리나무가 무성한 오솔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애용하는 산길이어서 등산객 구경이 즐거운 길도 있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재개발지역을 지나기도 합니다. 모든 길이 예쁘지만은 않지만, 그것도 인생길입니다.
부산일보는 작은 리본(사진) 하나를 달아 걷는 이들의 길잡이로 삼겠습니다. 올 한 해 금정산둘레길을 부산일보와 함께 걸어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글·사진=이재희·전대식 기자 jaehee@busan.com

다시 길을 걷습니다. 새해 새 마음으로 '훅~' 긴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길을 나섭니다.
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입니다. 볼에 와 닿는 겨울 된바람은 얼음장같이 맑고 투명하여, 세간의 잡념들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들메끈을 고쳐 매고 금정산둘레길을 갑니다. 늘 익숙하여,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길입니다. 내 집 앞을 지나는 길이었고, 아이들 방학 숙제를 위해 식물 채집을 하러 갔던 길이기도 했습니다.
꼭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어떻습니까. 산은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의 마을이 되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산과 잇닿아 있기에 오래 전부터 산과, 사람들의 마을은 하나였습니다.
그 익숙하고, 가까운 금정산둘레길을 이제 부산일보가 걸어봅니다.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길인 금정산둘레길을 먼저 소개하는 것에 이어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운 둘레길을 찬찬히 걸어보는 일 등도 계속해 나갈 작정입니다.
총 90㎞, 사람들 애용하는 산길
인위적 개발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
걸으면서 욕심 버리는 '무욕의 길'

·금정산, 부산의 어머니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름다운 금정산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옵니다. '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 큰 돌이 있는 데 그 위에 샘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가 7촌 가량으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 마리 금빛 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논다.'
그래서 금빛 샘이 있는 산이라고 금정산(金井山)이라고 부른답니다.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는 고당봉(姑堂峰·801.5m)입니다. 금정산 고당봉 바로 아래에 보면 고모당이라는 당집이 수백 년 동안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모당은 고모산신, 즉 할미산을 모신 당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산신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리산 성모상이나, 한라산의 설문대할망이 다 그렇듯, 금정산 할미도 인간 세상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다주는 오랜 민간신앙을 반영하는 증표입니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갈래쳐 낙동정맥이라는 큰 산줄기를 생성합니다. 낙동강의 동쪽에 있고, 동해의 서쪽에 자리잡아 내륙과 동해를 나누는 분수령이 됩니다. 그 낙동정맥이 크게 이어져 마침내 금정산에서 한번 솟구치고, 몰운대에서 바다와 만납니다.
금정산은 그렇게 백두의 기세가 둥지를 튼 곳으로 대륙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보듬다
금정산은 부산의 정신을 태동한 산이라고 말합니다. 금정산성에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금정산 정신은 곧 불굴의 의지와 강건한 기운을 자랑하는 '부산의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산의 둘레는 동쪽으로는 부산 금정구 장전동과 남산동이고, 서쪽으로는 북구 화명동과 금곡동, 남쪽으로는 동래구 온천동이며, 북쪽으로는 경남 양산시 동면으로 뻗어 있습니다. 백양산과 금정봉(쇠미산)이 그 뿌리가 다르지 않아 부산진구와 사상구까지 확장돼 있으니 가히 부산의 든든한 기둥임에 틀림없습니다.
금정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인 범어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라가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창건한 범어사는 국청사, 해월사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내는 훌륭한 수호신장이었습니다.
산세가 아름다운 금정산은 다양한 동식물을 보듬고 있습니다. 고산습지에는 하늘산제비난, 방울고랭이가 자생하고 있고, 끈끈이주걱과 땅귀개 같은 식충식물이 사는 등 101과 271속 538종의 식물들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는 물론 붉은배새매와 동박새 등 12목 34과 89종의 조류가 사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멧돼지와 고라니, 삵 등 포유류도 24종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나직하게 둘레를 걷다
길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늘 평탄하고 쉬운 길만 있다면 인생이 무에 그리 재미있냐고 이야기합니다. 실은 힘들지 않은 탄탄대로만 있는 길이 좋긴 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진창도 만나고, 끊어진 길에서 헤매기도 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높은 곳을 지향하여 정상에 서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먼저 앞서가거나, 느릿하게 걸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둘레길은 어쩌면 낮은 곳으로 향하고, 욕심을 버리는 무욕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금정산둘레길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여러 날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때로는 가시덤불에 긁히고, 한참을 갔던 길이 끝이 막혀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쉽게 시작한 길이 너무 가팔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녀온 길을 정리하니 90㎞. 우리네 거리로 환산하면 225리입니다. 마을도 지나고, 구멍가게 앞을 지나기도 합니다. 장끼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숲길도 있고, 오리나무가 무성한 오솔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애용하는 산길이어서 등산객 구경이 즐거운 길도 있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재개발지역을 지나기도 합니다. 모든 길이 예쁘지만은 않지만, 그것도 인생길입니다.
부산일보는 작은 리본(사진) 하나를 달아 걷는 이들의 길잡이로 삼겠습니다. 올 한 해 금정산둘레길을 부산일보와 함께 걸어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글·사진=이재희·전대식 기자 jaehee@busan.com
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입니다. 볼에 와 닿는 겨울 된바람은 얼음장같이 맑고 투명하여, 세간의 잡념들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들메끈을 고쳐 매고 금정산둘레길을 갑니다. 늘 익숙하여,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길입니다. 내 집 앞을 지나는 길이었고, 아이들 방학 숙제를 위해 식물 채집을 하러 갔던 길이기도 했습니다.
꼭 산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어떻습니까. 산은 아래로 내려와 사람들의 마을이 되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산과 잇닿아 있기에 오래 전부터 산과, 사람들의 마을은 하나였습니다.
그 익숙하고, 가까운 금정산둘레길을 이제 부산일보가 걸어봅니다.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길인 금정산둘레길을 먼저 소개하는 것에 이어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운 둘레길을 찬찬히 걸어보는 일 등도 계속해 나갈 작정입니다.
총 90㎞, 사람들 애용하는 산길
인위적 개발없이 있는 그대로 소개
걸으면서 욕심 버리는 '무욕의 길'

·금정산, 부산의 어머니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름다운 금정산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옵니다. '금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산마루에 큰 돌이 있는 데 그 위에 샘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고 깊이가 7촌 가량으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한 마리 금빛 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논다.'
그래서 금빛 샘이 있는 산이라고 금정산(金井山)이라고 부른답니다.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는 고당봉(姑堂峰·801.5m)입니다. 금정산 고당봉 바로 아래에 보면 고모당이라는 당집이 수백 년 동안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모당은 고모산신, 즉 할미산을 모신 당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산신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리산 성모상이나, 한라산의 설문대할망이 다 그렇듯, 금정산 할미도 인간 세상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다주는 오랜 민간신앙을 반영하는 증표입니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갈래쳐 낙동정맥이라는 큰 산줄기를 생성합니다. 낙동강의 동쪽에 있고, 동해의 서쪽에 자리잡아 내륙과 동해를 나누는 분수령이 됩니다. 그 낙동정맥이 크게 이어져 마침내 금정산에서 한번 솟구치고, 몰운대에서 바다와 만납니다.
금정산은 그렇게 백두의 기세가 둥지를 튼 곳으로 대륙의 기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입니다.
·사람과 자연을 보듬다
금정산은 부산의 정신을 태동한 산이라고 말합니다. 금정산성에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금정산 정신은 곧 불굴의 의지와 강건한 기운을 자랑하는 '부산의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산의 둘레는 동쪽으로는 부산 금정구 장전동과 남산동이고, 서쪽으로는 북구 화명동과 금곡동, 남쪽으로는 동래구 온천동이며, 북쪽으로는 경남 양산시 동면으로 뻗어 있습니다. 백양산과 금정봉(쇠미산)이 그 뿌리가 다르지 않아 부산진구와 사상구까지 확장돼 있으니 가히 부산의 든든한 기둥임에 틀림없습니다.
금정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인 범어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라가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창건한 범어사는 국청사, 해월사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내는 훌륭한 수호신장이었습니다.
산세가 아름다운 금정산은 다양한 동식물을 보듬고 있습니다. 고산습지에는 하늘산제비난, 방울고랭이가 자생하고 있고, 끈끈이주걱과 땅귀개 같은 식충식물이 사는 등 101과 271속 538종의 식물들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는 물론 붉은배새매와 동박새 등 12목 34과 89종의 조류가 사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멧돼지와 고라니, 삵 등 포유류도 24종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나직하게 둘레를 걷다
길은 인생이라고 합니다. 늘 평탄하고 쉬운 길만 있다면 인생이 무에 그리 재미있냐고 이야기합니다. 실은 힘들지 않은 탄탄대로만 있는 길이 좋긴 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진창도 만나고, 끊어진 길에서 헤매기도 하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높은 곳을 지향하여 정상에 서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먼저 앞서가거나, 느릿하게 걸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둘레길은 어쩌면 낮은 곳으로 향하고, 욕심을 버리는 무욕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금정산둘레길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여러 날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때로는 가시덤불에 긁히고, 한참을 갔던 길이 끝이 막혀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쉽게 시작한 길이 너무 가팔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녀온 길을 정리하니 90㎞. 우리네 거리로 환산하면 225리입니다. 마을도 지나고, 구멍가게 앞을 지나기도 합니다. 장끼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숲길도 있고, 오리나무가 무성한 오솔길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널리 애용하는 산길이어서 등산객 구경이 즐거운 길도 있습니다. 폐허가 되어버린 재개발지역을 지나기도 합니다. 모든 길이 예쁘지만은 않지만, 그것도 인생길입니다.
부산일보는 작은 리본(사진) 하나를 달아 걷는 이들의 길잡이로 삼겠습니다. 올 한 해 금정산둘레길을 부산일보와 함께 걸어보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글·사진=이재희·전대식 기자 jaehee@busan.com
[길을 걷다] 금정산 둘레길 <1> 범어사~ 양산 동면초등교 8.7㎞ | ||||||||||||||
지장암 뒤편 전국 사찰 이름 새긴 돌 200여 개 '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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