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산악인의 연인' 아마다블람, 독보적 존재감 드러내
2013-07-25 [07:54:20] | 수정시간: 2013-07-26 [20:28:11] | 30면
* 황량한 산속에 위치한 마체르모의 로지들. 트레커들이 마을에 내려가기 위해 잠시 내려다 보고 있다. 이상배 씨 제공
고쿄의 아침은 맑았다. 히말라야 산속의 고요함과 신비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산증세도 사라졌다. '우윳빛호수'라는 두드포카리를 비롯해 고쿄의 세 호수를 잇따라 감상한 뒤 하산길을 이어갔다.
점심은 마체르모(4410m)에서 먹었다. 고쿄∼마체르모는 7㎞ 정도였지만 쉽지 않은 하산이었다. 돌무더기 길을 빠져나가면 광활한 들판이 나오고, 그 들판의 끝에 이르면 탐세르쿠가 장벽처럼 길을 막았다. 특히 우리는 다른 트레커들의 등산루트를 하산길로 이용해 이른 아침부터 "나마스테"라고 외치는 네팔 인사를 많이 받았다.
점심 메뉴는 삶은 감자와 계란이었다. 돌레(4,200m)에 잠시 들렀더니 앙도카가 알은체했다. 2001년 초모랑마 청소 등반 때 식사 도우미로 함께했던 네팔 아줌마였다. 당시 그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5,400m)에서 일했다.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지금 재롱을 피우고 있다.
■고도 1천m 떨어지니 호흡 좋아져
돌레에서 남체바자르까지는 14.8㎞였다. 제법 멀었다. 돌레에서 조금 더 내려와 포르체텡가(3,680m)에서 숙박했다. 고쿄와 비교하면 고도가 1천m 이상 떨어졌다. 덕분에 일행의 컨디션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랫만에 숙소에서 세탁하고 여유도 즐겼다.
* 남체바자르에서 내려오다 만난 짐꾼들.
포르체텡가는 쿰중과 포르체, 고쿄의 갈림길에 위치했다. 고쿄호수에서 흘러내려온 계곡물은 에베레스트에서 내려온 계곡물과 합류해 두드코시라는 강이 된다. 그 강의 목적지는 인도양이다.
히말라야에서 트레킹을 할 때에는 타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럴 이유도 없다. 그냥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바라보면서 걷는 것이 가장 좋은 트레커이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철학의 길이기도 하다.
포르체텡가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몽라(3,973m)로 향했다. 몽라도 고개인데, 다시 오르막을 오르려니 쉽지 않다. 끝없는 산허리를 돌아가는 것도 힘겹고 지루했다. 그나마 모퉁이마다 나타나는 설산이 휴식을 대신했다.
드디어 타르초 깃발이 펄럭이는 몽라에 올랐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조망에 또다시 탄성을 질렀다. 아마다블람, 탐세르쿠, 콩데피크가 줄줄이 위용을 자랑했다.
세계 산악인의 연인이라 부르는 아마다블람은 쿰부 골짜기에서는 다른 봉우리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독보적인 존재다. 2004년 동계 등반으로 경남의 젊은이들과 올랐던 곳이기도 하다. 저 멀리 에베레스트와 로체(세계 4위의 고봉)가 구름 속에서 가물거린다.
■"비행기는 언제?" 기다림이 미덕
쿰중(3,800m)으로 내려서는 비탈길에서 포르체에 살고 있는 판노루 셰르파를 만났다. 나를 알아보고 "미스터 리"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는 그는 미국 에베레스트 상업대에서 고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형인 나티 셰르파는 한국원정대와 등반하다 안나푸르나에서 숨졌다. 히말라야는 내게 참 많은 인연의 끈을 준 곳이다.
남체바자르로 돌아와 잠링 게스트하우스에서 여장을 풀었다. 이제 하루만 더 걸으면 일정이 끝난다. 다음날 루클라에 도착하니 로지 안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우려한 대로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도리가 없다. 애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포기하고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히말라야에서 배울 수 있는 미덕 중 하나다.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 인내와 겸손을 배우면 된다.
히말라야에서 뜻대로 되는 것은 없다. 그래서 더 마음을 내려놓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설령 우리가 시간을 왜 지키지 않느냐며 따지고 들어도, 특별한 이유없이 짜증을 내도 이곳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혹은 겸손의 표정으로 우리를 대한다. 그때마다 이런 말이 귓전을 때린다. "No problem(아무 문제가 없다)." -끝-
영남문화등산학교 이사장 as80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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