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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히말라야 트레킹] ⑨ 쿰부히말/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코스 <2> 남체바자르∼디보체

원태산 2013. 7. 4. 11:01

3,500~3,800m 오르내리는 남체바자르, 고소 적응 '안성맞춤'

2013-07-04 [08:15:43] | 수정시간: 2013-07-04 [09:34:48] | 32면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30704000039

 

 

 

* 남체바자르에서 쿰중으로 가는 길목. 해발 3천m를 웃도는 고산지대인데도 밭농사가 이뤄지고 있다.

 

셰르파(Sherpa)는 네팔 동부 히말라야 산속에 살고 있는 티베트계의 한 종족이다. 라마교를 신봉하며 농업, 목축업, 상업에 주로 종사하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히말라야 등정대의 짐을 나르고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로 더 잘 알려졌다. 이 셰르파는 네팔어로 '동쪽사람들'을 뜻한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에베레스트가 처음으로 자신의 머리에 오르는 것을 허락한 사람이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였는데, 노르게이가 바로 셰르파였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힐러리가 주도했지만 노르게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세계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역사는 씌어질 수 없었다.


■성이 모두 같은 셰르파 족

셰르파 족은 이름이 비슷하다. 그 이유는 성이 모두 같고 이름은 태어난 요일에 맞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 태어나면 다와 셰르파, 화요일에 출생했다면 밍마 셰르파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수요일에 태어난 셰르파는 락파, 목요일은 푸르바, 금요일은 파상, 토요일은 펨바, 일요일은 니마로 불린다.

* 탐세르쿠와 캉테가의 설산을 배경으로 한 남체바자르.

 

남체바자르에 도착했을 때는 금요일이었다. 매주 한 차례 서는 장이 토요일이라 이튿날 부족한 물자를 현지에서 다행히 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남체바자르는 쿰부 골짜기의 경제 중심지 역할을 한다. 장이 서면 인근의 타메나 쿰중, 팡보체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이말도 우리의 5일장처럼 떠들썩했다.

남체바자르는 고소적응 훈련을 하기에 안성맞춤의 장소다. 남체바자르∼샹보체∼쿰중∼캉주마∼남체바자르(지도 참조)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인데, 3,500∼3,800m의 고도를 4∼5시간가량 오르내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소에 적응하게 된다. 주변의 콩데(6,186m), 캉데가(6,685m), 탐세르쿠(6,608m)를 오를 때에도 이곳에서 고소적응 훈련을 갖는다. 우리도 남체바자르에서 샹보체(3,720m)로 향했다. '어머니의 보석상자'로 불리는 아마다블람(6,856m)이 햇빛에 반사된 설산을 드러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아마다블람은 지난 2004년 동계 등반 때 오른 적이 있다.

쿰중은 3,780m의 고갯마루다. 이곳에 올라서면 에베레스트(8,848m)와 로체(8,516m), 눕체(7,861m), 아일랜드(6,189m)를 잇따라 조망할 수 있다. 날씨까지 쾌청해 시야가 더 넓다. 큰 행운이었다. 쿰중은 가이드인 삼두와 마일라가 사는 곳이었다. 에드먼드 힐러리가 세운 학교도 이곳에 있다. 내친김에 마일라의 집에 잠시 들러 요기를 하고 사나사로 내려섰다. 사나사는 고쿄로 가는 길목이다. 그리고 캉주마(3,550m)를 거쳐 다시 남체바자르로 돌아왔다. 이 코스를 돌고나니 동행한 트레커들도 그런대로 고소에 적응한 듯보였다.

 

* 두드코시 강과 보테코시 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흔들다리.

 

■야크를 만나면 흙먼지 뒤집어 써

이튿날 짐을 챙겨 텡보체로 올랐다. 그러나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캉주마(3,550m), 풍기텡가(3,250m), 텡보체(3,860m), 디보체(3,710m)의 높낮이가 들쑥날쑥하듯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걸어야 했다.

특히 풍기텡가에서 텡보체는 해발 610m나 차이가 나 헉헉대는 트레커들이 많았다. 특히 도중에 야크를 만나면 으레 흙먼지까지 뒤집어 써야 했다. 텡보체에는 이미 많은 트레커들이 도착해 있었다. 숙소가 부족했다. 조금 더 걸어 디보체(3,720m)에서 로지를 구했다. 숙소 앞으로 아마다블람(6,856m)이 위용을 자랑했다. 로지 이름도 아마다블람이었다. 에베레스트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었던 하루였던만큼 일행들은 깊은 잠에 빠졌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고소에도 적응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다가 얼굴이 붉어졌다. 숙박료가 터무니없이 비쌌던 것이다.

as8035@naver.com 영남등산문화학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