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 <13> 경주시 산내면 대현3리 ~ 울주군 두서면 차리 12.9㎞
12차 구간은 땀나는 구간이었다. 문복산 능선으로 올라갈 때 '깔딱'거리는 자세가 역력했다. 동행한 한 독자는 "다른 구간보다 조금 벅찬 구간이었지만 능선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의 육중한 산세와 조망미 덕에 '고행(?)'을 잊었다"고 말했다. 마루금에 몸을 맡기면서 바라본 고헌산이 일품이었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이번 구간에서 답사팀은 고헌산의 허리를 가로지른다. 소호분교에서 소호고개를 넘어 1차 구간의 기점인 석남사로 가는 마무리 길을 연다. 약간의 포장도로가 있지만 차량 이동이 적다. 길가의 벚나무, 앵두나무는 덤이다. 동창천, 구량천이 나란히 흘러 지겹지도 않다. 소호고개 구간만 뺀다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무난한 길이다. 13차 구간 답사거리는 12.9㎞, 넉넉잡아 4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이번 답사에는 본보 영남알프스 둘레길 자문위원인 이병진 산행대장이 동행했다. 영남알프스를 얘기할 때 그를 빼놓을 수 없다. 영남알프스가 좋아 산 오르내리기를 수십 차례. 이 대장은 위성사진과 머리가 아닌 발로써 5만 7천500분의 1 지도를 만들었다. '영남알프스 맥따라 산길따라'는 영남알프스를 찾는 산꾼들에게 스테디셀러 격인 지도다. 이 대장은 "영남알프스 산길과 물길이 내 몸에 새겨져 있다"고 말했다.
기점인 경북 경주시 산내면 대현3리는 택지개발공사가 한창이다. 예전에 이 일대는 소를 키우던 목장과 목초지였다. 축산농가들이 고기보다 땅을 파는 게 수지타산에 맞아 목장을 처분했다. 한때 40여 곳에 달하는 목장이 지금은 10곳 남짓하다. 지주들은 그 자리에 '가든(음식점)'이나 모텔을 지어 지금은 소 대신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
소호리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 포장도로인데 지나가는 차가 드물다. 답사팀의 뒤는 문복산이, 오른쪽은 고헌산이 부드러운 각을 이룬다.
고헌산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과 상북면의 경계에 있다. 언양의 진산이다. 일명 '영남알프스 전망대'로 불린다. 고헌산에 올라가면 영남알프스의 1,000m 급 고봉이 한눈에 들어와서다. 이 산에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고헌산에서 문복산 코끼리바위가 보인다. 어느 날 동네의 한 청년이 나뭇가지에 밧줄을 매달고 코끼리바위 아래에서 석이버섯을 따고 있었다. 청년은 버섯 따기에 열중해 머리 위에 있는 솥뚜껑 크기만 한 독거미를 보지 못했다. 거미는 밧줄을 물어뜯고 있었다. 때마침 고헌산에 있던 나무꾼이 이 광경을 보고 '거미가 줄을 끊는다'고 소리쳤고 그 덕에 청년은 살 수 있었다. 이후 고헌산은 고함치는 산, 일명 '고함산'이 됐다.
와황재 양쪽 길가에 산행 안내리본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이 대장은 "고헌산을 지난 낙동정맥이 와황재를 지나 가지산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고헌산 산행 기점으로도 활용된다. 오르막이 그다지 가파르지 않고 순하다. 한때 이 고개 이름을 두고 '와황재'와 '외항재'가 혼재했다. 예전 명칭인 '기왓골'을 한자로 옮기면서 혼란이 발생했다. 지난 2005년 울산시지명위원회에서 와황재로 결론 내렸다. 와황재 고갯마루부터 울산 울주군 상북면이다.
고개를 내려서는 중턱에 옥천당 건물이 있다. 지하 암반수와 옹기 탕전기로 한약을 달이는 곳이다. 옥천당 바로 옆에 '망아로'가 있다. 최근에 조성된 것이다. 700m 정도 되는 참나무 숲길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의 장승이 서 있는 고헌갤러리 간판을 보다 와리 입구에 다다랐다. 기와를 만들던 마을이다.
와리마을 입구에 버찌와 앵두가 터질 것처럼 나무에 매달렸다. 떨어진 버찌와 앵두가 길을 알록달록 물들였다. 답사팀은 너 나 할 것 없이 버찌와 앵두를 땄다. 길을 걸으면서 한 알씩 오물오물 씹었다. 우리는 서로의 입가에 묻은 퍼런 얼룩을 보고 깔깔댔다.
한참을 내려오면 소호리 삼거리가 나온다. 소호마을은 예로부터 물이 좋기로 유명했다. 밀양강의 발원지인 동창천이 마을 가운데로 흐른다. 한때 교통이 불편해 울주군의 대표 오지마을이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틀었다. 궁근정초등학교 소호분교에 잠시 들렀다. 운동장 가운데 35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다. 큰 줄기는 두 갈래다. 아이들이 나무에서 미끄럼을 탔는지 껍질이 반들반들하다. 분교 한쪽에서 북, 꽹과리, 장구 소리가 요란하다. 장단은 휘모리, 엇모리가 오고갔다. 소리가 제법이다. 아이들은 난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호분교 뒤쪽으로 매끈한 능선이 눈에 띄는 산이 있다. 백운산(893m)이다. 마을 사람들은 백운산보다 열박산(咽薄山)으로 부른다. 정상 부근의 바위굴에서 신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위해 수련했다고 한다. 열박산은 주봉보다 삼강봉이 더 알려졌다. 밀양강, 태화강, 형산강의 수맥이 이 봉우리 아래에서 시작된다.
동창천을 따라 소호리를 벗어난다. 고헌산 큰골에서 내려오는 지천에 동네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고 있다.
고헌산은 산세는 밋밋하지만, 골은 깊고 우렁차다. 대통골, 곰지골, 큰골, 도장골 등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골짜기가 여럿 있다.
약수암 입구부터 소호고개가 시작된다. 길은 마사토와 자갈, 시멘트가 뒤섞여 있다. 큰골 물소리와 길의 마찰음이 어울려 정겨운 잡음을 낸다. 이런 길을 걸을 때는 콧노래가 나온다.
15분쯤 가면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은 백운산으로 가는 등산로 오른쪽으로 오른다. 경사가 가팔라지나 싶었는데 굽이를 돌자 이내 평평해진다. 소나무, 잣나무 향에 오르막의 버거움을 잠시 잊는다. 고헌산 남쪽 능선을 따라 방화선이 가르마처럼 그어져 있다. 그 선으로 등산로가 났다. 사람들이 그 길을 걸으면서 땅 속살이 누렇게 배를 드러냈다. 방화선이 곧 상처가 됐다.
갈림길에서 20분가량 떨어진 거리에 이정표 말뚝이 서 있다. 주변에 화장실이 있다. 오른쪽은 고헌산 방향, 왼쪽으로 꺾는다.
쉬려고 자갈길 오른쪽 숲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나타난 푸른 하늘. 와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석남사가 있는 언양 일대가 발아래 걸린다. 올해 초 답사팀은 저곳에서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걸었다. 겨울, 봄이 가면 여름이 오듯 둘레길도 이제 마무리로 접어들고 있다. 언양 들판 뒤로 멀리 문수산이 보인다. 뜻하지 않은 비경에 답사팀은 '만세'를 외쳤다.
소호고개 정상에 섰다. 이제부터 내리막이다. 키 높은 나무들이 숲을 만들어 그늘이 짙다. 임도는 25분 정도. 차리 방면 이정표를 보고, 다시 10여 분 더 내려간다. 갈림길에서 왼쪽은 두서면 선필마을, 오른쪽이 차리다.
평일 오후 차리마을은 한적했다. 개들의 울음이 골목을 따라 울렸다. 마을을 벗어나 구량천 다리를 건너, 둑을 따라 걸었다. 나무판을 댄 징검다리가 앙증맞다. 둑에서 딴 앵두를 떨어뜨릴까 조마조마했다.
중차리에서 무명교를 지나 농로를 따라 하차리까지 걸었다. 그늘이 없다 보니 보폭은 어느새 잰걸음이다. 모내기를 마친 논이 폭양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둘레길에도 여름이 기어이 왔다. 차리 버스정류소에서 오늘 길을 마감했다. 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영상=김정규·이남영 대학생 인턴
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언양시외버스터미널(052-262-1030)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오전 6시 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소요시간 50분, 요금 3천200원. 언양터미널에서 경주 산내면 대현리로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 50분에 1대뿐이다. 소요시간 20분, 요금 1천500원. 버스를 놓쳤다면 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한마음콜택시(052-263-6000), 언양콜택시(052-254-4545)가 있다. 요금 1만 5천 원.
자가용승용차로 간다면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빠져 언양교차로에서 밀양·석남사 방면으로 진행한다. 69번 지방도로를 타고 청도·경주 방면으로 가다 덕현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경주·산내 쪽으로 5㎞쯤 가면 된다. 소요시간 1시간 10분.
종점인 차리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오후 1시, 3시 10분, 5시 20분, 7시 30분(막차)에 있다. 소요시간 20분, 요금 1천200원. 택시를 탄다면 6천~7천 원 정도.
언양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9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움직인다.
전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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