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영남알프스 둘레길

[길을 걷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 <12>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 입구 ~ 경주시 산내면 대현3리 14.7㎞

원태산 2011. 6. 16. 15:31

[길을 걷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 <12>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 입구 ~ 경주시 산내면 대현3리 14.7㎞

물 좋고 산 깊은 곳, 숲길 파노라마에 더위는 싹~

 

 

 백두대간의 허리인 태백 매봉산에서 불거진 낙동정맥은 부산의 몰운대까지 370㎞를 힘차게 달린다. 그 사이 영남 알프스의 고헌산, 가지산, 간월산, 영축산도 이 정맥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이 낙동정맥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다. 답사팀은 이미 밀양의 염수봉, 정승골, 오치고개, 청도의 억산 능선 등 네 번의 고갯길을 넘었다. 1,000m대의 고산이 운집한 영남알프스의 둘레길을 이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답사팀은 고민했다. 지도를 한참 들여다봤고 길눈이 밝은 촌로를 수소문하기도 했다. 능선과 깔딱고개를 버리고 마을과 도시로 난 아스팔트 길을 따를 수도 있었다. 하나 대개 '이런 길'은 영남알프스의 산군에서 멀리 떨어져 돌아가는 길이었다. 영남알프스를 갖다 붙이기에는 민망한 길이었다. 거기에다 '그런 길'은 인공과 포장의 냄새가 물씬한 길이라 '둘레길'의 맛도 떨어졌다. 하여 답사팀은 다섯 번째 고갯길로 문복산 능선을 넘어 답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길은 운문사에서 통점마을을 지나 삼계리에서 계살피계곡으로 붙는다. 계곡 물길을 따라 문복산 능선을 넘어 경주 산내면 대현리에 닿는다. 능선을 넘는 구간에서 팥죽땀이 난다. 솔직히 말하면 30분 정도 '산행'을 해야 한다. 하나 흘린 땀만큼 능선에서 '야호' 소리가 난다. 능선만 넘으면 호젓한 숲길의 파노라마다. 이번 구간은 총 14.7㎞, 넉넉잡아 5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스테디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는 '운문사의 아름다움'을 다섯 가지로 꼽았다. 그중 하나가 운문사 입구의 솔밭이다. 명불허전! 수백 년 된 노송들이 아침 안개 속에서 참선하듯 서 있다. 안개를 뚫고 나온 솔가지가 신비스럽다.

매표소 입구에서 신원리 쪽으로 걸었다. 오른쪽에 복호산(伏虎山)과 지룡산(地龍山)이 삼엄하게 엎드려 있다. 복호산은 말 그대로 호랑이가 엎드린 형세다.

지룡산에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통일신라 말엽, 이 산 아래에 아름다운 처녀가 살았다. 어느 날 용모가 출중한 사내가 처녀의 방에 침입했고, 처녀와 운우지정을 나눴다. 아이를 밴 처녀에 놀란 부모가 사내의 정체를 밝히려고 몰래 사내 몸에 명주실을 감았다. 그 실을 쫓으니 동굴 속에 큰 지렁이가 있었다. 부모는 노루 가죽을 덮어 지렁이를 죽였다. 지렁이가 죽은 뒤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란다. 견훤은 신라의 경주를 치려고 이곳에 성을 쌓았다. 지금도 정상 부근에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신원리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69번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다. 이 길을 따라 신원천이 발 아래로 흐른다.

통점(通店)은 신원리 염창(鹽倉)과 삼계리를 잇는 마을이다. 통점에서 솥을 구웠는데, '좋은 솥을 구워 만사가 형통(亨通)하자'며 마을 이름을 통점으로 불렀다.

통점마을을 지나 20분 정도 거리에 수리덤계곡이 있다. 서쪽의 옹강산(832m)과 북쪽의 서담골봉(837m), 동쪽의 문복산(1,014m)의 멧부리가 만든 골짜기이다. 여름에 피서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삼계1교를 건너자 왼쪽에 기와집 한 채가 있다. 현판에 '성황당(城隍堂)'이라고 새겼다. 안내판에는 '삼계리는 화랑 세속오계 발상지요,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의 발생지며 해방 후 동족 상쟁의 격전지이다. 역사적 변란의 재앙을 막기 위해 서낭당을 세워 부락의 안녕을 기원한다'고 적혀 있다.

삼계2교에서 계살피계곡으로 꺾는다. 골이 깊어 물길도 어엿하다. 계곡길은 문복산 6푼 능선까지 닿는다.

때죽나무, 굴참·떡갈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자갈 돌길이 소란스럽지만 성가시진 않다.

바위가 넓은 데서 잠시 쉬었다. 계곡 물살은 상류로 갈수록 약해졌지만, 물의 속살은 더 맑았다. 맑은 물엔 어김없이 꺽지와 피라미가 놀았다.

계곡 길을 이리 넘고 저리 건너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길 가장자리에 흙먼지가 묻은 비석이 있다. '가슬갑사 유적지' 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가슬갑사는 신라 진흥왕 18년(557)에 신승(神僧)이 지은 5개 갑사 중의 하나다. 진평왕 22년(600)에 원광법사가 이 절을 중창했다. 원광은 '화랑의 갈 길을 알려달라'는 귀산, 추항 두 화랑에게 임전무퇴 등 세속오계를 알려줬다. 절은 후삼국 시대에 폐사돼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가 지난 1997년 현재 비석 위치 부근에서 통일신라 토기와 석축이 발견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가슬갑사 터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폭포 쉼터가 있다. 산꾼들은 '무명폭포'로 부른다. 2층 건물만 한 높이에서 물이 떨어진다.

폭포 쉼터에서 개활지를 지나 10분 정도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땀깨나 흘려야 한다. 된비알이 이어지다가 꺾어지는 부분에 완만한 비탈이 나온다. 느린 걸음으로 25분쯤 걸었다. '더 올라야 하나?' 싶을 즈음 문복산 능선에 올라섰다. 능선을 따라 바람이 불었다. 땀도 식혀주고, 답답한 마음이 뚫리는 유쾌한 바람이다.

전망 좋은 암봉에 섰다. '울주의 진산' 고헌산이 당당한 산세를 자랑했다. 뒤를 보니 문복산, 옹강산 등 영남알프스의 동쪽 산덩이가 확연하게 다가온다. 가지산, 운문산, 억산의 마루금도 한 폭의 산수화처럼 넘실댄다.

40분 정도 등날을 탄다. 학대산을 거쳐 낙동정맥 이정표 구간까지 무리 없이 내려온다. 이정표에서 10분 정도 진행하면 대현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길이 뚜렷해서 리본만 보고 가면 별 탈이 없겠다. 갈림길에서 임도 쪽으로 길을 낸다. 임도에서 종점인 대현3리 버스정류소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영상=김정규·이남영 대학생 인턴

어떻게 가나?

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언양시외버스터미널(052-262-1030)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6시 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 소요시간 50분(요금 3천200원). 언양터미널에서 운문사행 완행버스는 오전 9시, 10시 30분 두 편뿐이다. 소요시간 40분(요금 3천 원).

자가용승용차는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에서 빠져 언양교차로에서 밀양·석남사 방면으로 진행한다. 덕현교차로를 지나 덕현삼거리에서 69번 지방도로를 타고 청도·경주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15㎞쯤 가다 신원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2.6㎞가량 더 가면 운문사 매표소가 나온다.

종점인 경주시 산내면 대현3리에서 언양터미널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오후엔 3시 40분, 5시 30분, 8시 세 편뿐이다. 소요시간 20분(요금 1천200원). 버스를 놓쳤다면 산내면 렌터카(052-254-1141)를 이용해 언양까지 가야 한다. 요금 1만 3천 원 정도.

전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