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영남알프스 둘레길

[길을 걷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 <11>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 입구 11.7㎞

원태산 2011. 6. 9. 11:01

[길을 걷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 <11>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 입구 11.7㎞

이중환의 '택리지' 발자취 따라 억산 능선 넘어 '뚜벅뚜벅'

 

 

 당쟁의 상처를 딛고 조선 땅을 누빈 실학자 이중환. 그가 '살 만한 땅이 어딘가?'에 대한 답으로 펴낸 인문지리서인 '택리지'. 이 책 복거총론 산수 편에는 "청도 운문산과 이어진 봉우리와 겹쳐진 멧부리들로 골이 깊숙하다. 불가에서는 '성인 1천 명이 세상에 나올 터'라고 하고, '병란을 피할 복스러운 땅'이라고도 한다"고 씌어 있다.

이번 구간은 이중환이 말한 운문산의 겹친 멧부리를 보며 가는 길이다. 북쪽 영남알프스의 지붕 구만산과 억산, 비구니 도량인 운문사와 나란히 선 지룡산과 마주하는 길이다. 지난 10차 구간에서 만난 동창천을 벗어나 논길, 신작로를 거쳐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네 번째 고개인 억산 능선을 넘게 된다. 걷는 거리는 11.7㎞, 쉬는 시간 포함해 약 4시간 30분이 걸린다. 억산 능선 구간만 빼고 전체적으로 걷기에 무난하다.

청도 땅은 예로부터 지리와 산세가 빼어나고 인물이 많이 났다. 풍수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 곳이 많다. 하여 이번 답사에는 집터와 실내장식을 결합한 '퓨전 풍수' 전문가인 류지홍 워크샵진로교육연구소 소장이 동행했다.

경북 청도군 매전면 당호리 버스정류소에서 2만 5천 분의 1 지도를 펼치고 오늘 코스를 가늠해 보았다. 당호리는 마을을 동창천이 감싸고 가는 형세다. 류 씨는 "당호리는 풍수의 어원인 '장풍득수(바람은 감추고 물은 얻는다)'의 기본을 잘 챙긴 마을"이라고 평했다.

919번 지방도로를 걷는다. 아침 물안개가 멀리 동창천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날린다. 20분쯤 가다 왼쪽 논 한가운데로 난 신작로로 꺾었다. 모내기 철인지 모판이 논에 빗질한 듯 잘 포개져 있다. 5분이면 동창천 둑을 만난다. 10차 구간보다 훨씬 상류지역이라 하천 폭이 그리 넓지 않다. 둑을 따라가니 구만산 줄기가 오른쪽에 훤히 드러났다. 후덕한 능선이 아침 하늘에 획을 그었다. 둑길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쭉 늘어섰다. 초여름 햇볕이 따갑다. 다행히 둑길이 끝날 무렵 은행나무가 있었다. 그늘 품이 넓었다. 그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919번 도로다. 동창천 굽이와 길이 나란하다. 아음교를 지나 신목정마을 삼거리에서 마을로 들어섰다. 대추나무, 감나무, 복숭아나무의 푸른 잎이 싱그럽다. 조용한 마을이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럽다. 반가운 건지, 놀란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을 무논에 모가 반듯하게 박혔다.

마을을 벗어나면 곧바로 신지교가 나온다. 신지교를 건너서 신지2리 새마을회관으로 방향을 튼다. 답사팀을 이끌던 동창천과는 이제 안녕이다. 회관은 2층짜리 건물인데, 1층을 할아버지방, 할머니방으로 나누었다. 각방을 쓰는 사연이 궁금했다. 건립비에는 '회관을 마을 역사를 새로이 밝히고 긍지를 가꾸어 갈 문화의 전당이 되도록 하자'고 적었다.

금천면 직원의 도움으로 지도에 없는 논길을 찾았다. 15분 정도 부지런히 걸었다. 억산 능선이 점점 뚜렷이 보인다. 저 능선을 오늘 넘어야 한다. 길부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마을 연못에서 바람이 불었다. 연못의 둘레가 제법 크다. 길부교회 쪽으로 걸었다. 어르신 내외가 복숭아 열매를 솎고 있었다. 70대 주인은 "촘촘하면 오히려 과질이 떨어진다. 많고 빽빽한 게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유 있는 길을 찾는 답사팀에게 하는 말 같았다.

잠시 뒤 오봉마을과 박곡마을로 나뉘는 길에서 직진한다. 박곡(珀谷)은 마을 모습이 '박'처럼 보인다 해서 붙었다. 박곡마을 가운데로 길을 냈다. 돌담길의 연속이다. 마을 나오는 어귀에 정자가 있다.

아스팔트 길을 걷다 보면 왼쪽에 기와집이 있다. 박곡동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03호)이 있는 보호 누각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건물이 한 채 더 있다. 안에 높이 276㎝의 불상이 앉아 있다. 첫인상은 석굴암 본존불과 흡사하다. 통일신라시대 조각 수법을 담은 듯 힘찬 어깨와 당당한 가슴이 뚜렷하다. 하지만 지난 1928년 화재로 광배와 대좌가 손상됐다. 불상의 얼굴 부분도 심하게 훼손됐다. 석불의 원래 모습은 어땠을까? 현판 하나 없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석불을 뒤로 하고 대비지 방향으로 향했다.

아스팔트 길을 버리고 농로를 따라 대비지로 이어진 언덕으로 올랐다. 비탈이 약해 걸을 만했다. 무명의 만화방초들이 발아래에 깔렸다. 조심조심 걸었다. 대비지 제방에 오르자 표표한 바람이 불어댔다. 대비지 둘레를 따라 걸었다. 그윽한 물빛에 억산 그림자가 어린 듯했다.

억산(億山)은 '억만건곤(億萬乾坤)' 즉, 하늘 땅 사이의 수많은 명산 중의 명산이라는 데서 이름을 따왔다. 새해가 되면 '억'자를 돈으로 해석해 많은 산꾼이 여기서 '부귀'를 빈다는 산이다. 특히 산정은 특이하게도 두 갈래로 갈라졌다. 전설에 따르면 동자승으로 변신한 이무기가 1천 년에 하루가 모자라 용이 못돼 도망을 쳤다. 그때 꼬리로 억산 봉우리를 내리치면서 산꼭대기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대비지에서 1㎞쯤 평평한 아스팔트 길을 걷는다. 왼쪽으로 붙어서 임도를 따라 걷다가 갈림길에서 산 쪽으로 붙는다. 이제부터 이번 구간의 고비인 억산 능선을 넘는 길이다. 초반부터 비탈이 가파르다. 얕은 너덜 구간이라 발이 미끄럽다. 집중하고, 신경을 써서 걸음을 주섬주섬 옮긴다. 쉴 때는 뒤를 돌아 억산을 바라본다. 대비지보다 이곳이 더 조망이 좋다. 30분 정도 가면 첫 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꺾어 20분 정도 더 간다. 또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틀어 2분 정도 더 가면 능선과 만난다. 주변에 돌탑이 있다.

능선만 넘으면 내리막이다. 때죽나무, 참나무가 만든 숲 터널로 걷는다. 굽이가 그늘이라 올라올 때 힘들었던 기억조차 벌써 가물가물하다. 30분쯤 여유롭게 내려간다. 독립가옥을 지나 숲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지룡산의 헌걸찬 암봉이 순식간에 나타난다.

암봉에 눈길을 주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운문사 입구 솔밭이 지척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운문천을 보니 가슴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독립가옥에서 운문사 입구까지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영상=김상훈 VJ·이남영 대학생 인턴

어떻게 가나?

대중교통은 기차 편이 낫겠다. 부산역(051-440-2288)에서 청도역으로 가는 무궁화호는 오전엔 5시 1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모두 9편이 있다. 소요시간 1시간, 요금 4천800원. 역 건너편 청도버스정류장(054-371-5100)에서 동곡·금천행 3번 버스를 타고 매전면 당호리 버스정류소에서 내린다. 소요시간 30분, 요금 2천700원.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대구·부산고속도로를 탄 뒤 밀양IC에서 나와 청도 쪽으로 진행한다. 25번 국도를 타고 긴늪사거리를 지나 옥산삼거리에서 우회전해 58번 국도를 타고 직진한다.소요시간 1시간 30분.

종점인 운문사 입구에서는 언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오후엔 2시 30분, 5시 25분 두 대뿐이니 답사시간을 잘 조절해야 한다. 소요시간 40분, 요금 3천 원. 전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