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시론] 우리 사회의 폭력문화를 넘어서는 법 /이상은

원태산 2011. 12. 28. 14:33

 

   
올 한 해를 돌이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폭력 문화인 것 같다. 한미 FTA의 국회 통과를 둘러싸고 한국 폭력의 대명사인 국회에서 일정한 폭력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래도 날치기 통과를 둘러싸고 최루탄까지 터질 줄은 몰랐다. 한국 민주주의의 대표 정당이라고 자부하는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통합파와 반통합파 간에 패싸움 같은 폭력이 난무했다. 정치권만 그런 줄 알았더니 한국의 대표적 이익집단인 의사협회 총회에서도 계란 및 액젓 투척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 사회는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이 사건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지만, 기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권력을 장악한 다수파 집단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대한 소수파의 테러적 폭력이라는 점이다. 다수파는 소수파의 의견과 이익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밀어붙인다. 다수파 내에서는 이것을 못하면 무능하고 바보같다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소수파는 다수파가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해 줄 것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죽자고 덤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소수파 내에서도 폭력을 동반한 테러적 무력 시위를 하지 않으면 무력한 바보라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다수파도 소수파도 양보를 모르고 끝없는 충돌로 치닫는다.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우선 약자의 비토권을 강화하고 힘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과거 소수의 다수에 대한 억압적 통치 구조로부터 이제 다수에 의한 민주정치의 구조로 성공적으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민주정치는 다수파의 소수파에 대한 일방적 힘의 행사로만 나타나고 있다. 어느 집단이든 자기가 권력을 잡으면 상대편에 대한 고려없이 일방적으로 자기의 이해를 관철시키려 한다. 권력집단이 바뀌면서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도 누가 권력을 잡든 일방적인 이해관철 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다수파가 소수의 입장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약자의 비토권을 강화하는 의사결정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수가 소수를 고려하여 약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힘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로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소수파도 더는 테러적 폭력에 의존할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절충, 협상과 타협의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사회에 만연한 의사결정 과정상의 폭력 사태를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는 문제해결 능력을 결핍한 사회인 것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두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할 때 이기느냐 지느냐의 단순논리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단세포 동물같다. 서로의 입장을 절충하고 타협하여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부재하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문제해결 능력 위주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암기위주의 교육만을 받아 정답 찍기에만 능해서인지, 아니면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경험하면서 비타협적 태도를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사회에 절충주의를 중시하는 문화의 형성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서구 선진국들을 보면 한결같이 주요 문제들에 대해 절충과 타협을 통해 나름대로의 해결 방안을 창출해 온 나라들이다. 반면 후진국들을 보면 파벌들 간에 끝없는 싸움으로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나라들이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우리 나름의 타협과 절충 방안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문화의 성숙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폭력성은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의 미성숙에 그 기본 원인이 있다. 자신의 이념, 이익을 우선시하고 인간을 그것의 도구로 생각하는 반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해쳐도 괜찮다는 사고가 은연중 깔려있다. 대한민국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형성된 나라이다. 인간을 소중히 하고 그 위에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절충해 나가는 것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이 땅에 실현하는 길이다.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