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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100세 시대의 은퇴설계 /정해수 -국제신문 20140313

원태산 2014. 3. 13. 11:25

[세상읽기] 100세 시대의 은퇴설계 /정해수

 

의학의 발전으로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2030년에는 대부분 선진국의 평균수명이 100세에 이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인생 100세 시대가 인류에게는 큰 축복일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끔찍한 비극이 될 수도 있다. 우선 건강과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 가까이에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면 그 긴 세월이 오히려 고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16년부터 정년이 60세까지로 연장됐다. 그렇지만 퇴직 후 40년을 더 살아야하기 때문에 지금의 평균수명보다 20년 이상 늘어난 노후생활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인생 전체의 질을 결정하는 측도가 될 것이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페달을 멈추지 않으면 좀처럼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지만 페달을 멈추는 순간 넘어져 버린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사람인 루퍼트 머독은 사람들이 자기를 끌어내기 전까지는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92세에도 그림을 그렸던 피카소, 99세에도 작품 활동을 한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 95세에 계관시인이 된 스탠리 쿠니츠, 미국 연방판사였던 웨슬리 브라운은 104세로 타계하기 몇 달 전까지도 재판을 진행했다. 일본의 최고령 의사인 히노히라 사게하끼 박사는 104세에도 전국순회 강연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88세인 송해 씨는 전국을 누비며 26년 동안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천재예술가 미켈란젤로가 성베드로 성당을 완성했을 때 그의 나이는 89세였고, 독일의 위대한 작가 괴테의 경우 최대의 역작인 파우스트를 완성했을 때 나이는 83세였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발명특허를 출원한 토마스 에디슨 역시 마지막 발명품을 출원했을 때 나이가 83세였다고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이 오히려 더 유능하고 더 창조적이고 더 지략이 풍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자신이 평생 해왔던 일과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내면에 묻혀있던 열정과 재능을 끄집어 내어 새로운 인생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얼마 전 신문에서 서울의 어느 국립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노교수 네 분이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아프리카 오지에서 글로벌 빈곤퇴치에 나서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또 젊어서는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어떤 분은 환갑이 되어서야 한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것도 모자라 앞으로 20년간 한의사로서 산간 오지 마을의 환자를 찾아다니며 인생의 제2막을 열겠다고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들의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에 마음속 깊은 박수를 보냈다.

영어에서 은퇴를 의미하는 'Retire'는 'Re-tire' 즉 새로운 바퀴로 바꾸어 달린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생 2모작, 3모작이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지 모른다. 아직도 많은 은퇴자들이 늘어난 인생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나 대책없이 하루하루를 소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구체적인 은퇴 계획이나 설계 없이 노후를 살아간다는 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아무런 꿈과 희망도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래 전 인터넷에서 본 이야기다. 60대 중반까지 직장에서 일한 뒤 정년 퇴임한 은퇴자는 남보다 훨씬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여행 다니고 건강이나 돌보면서 노후를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어느덧 90대 중반에 이르자 퇴직 후 그냥 허송세월한 30년이 너무나 안타깝고 후회가 돼 지금부터라도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연령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현실적 나이, 둘째는 건강 나이, 셋째는 심리 나이다. 이 심리적 나이야말로 자신의 기분과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제든 젊은 인생을 살 수 있는 원천이다. 은퇴를 설계하면서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열정을 쏟을 것인지 그려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이 만족감을 느끼며 신명나게 참여할 수 있는 일, 호기심이 발동되는 일, 지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하겠다. 일은 자아개념을 표현하고 이를 성숙하게 하며 정신적인 면을 더욱 깊어지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임을 알고 하루하루를 계획대로 보람있게 보낼 때 100세 시대의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정부도 초고령화 사회를 맞아 정년 연장뿐만 아니라 안정적이고 보람찬 은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영산대 호텔관광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