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음기가 성해지는 오늘은 '처서 ' 20140823

원태산 2014. 9. 5. 09:03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흰 이슬 맺히는 팔월달 남쪽 고을 / 八月南州白露繁
몇 그루 감나무에 뜨락이 환히 빛나누나 / 數株殷葉照荒園
한자의 시에 나오는 파리완을 대하는 듯 / 如看韓子玻瓈盌
형양의 먹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듯 / 似帶滎陽翰墨痕
객점 사립문도 문득 생기 넘치나니 / 店舍柴荊翻起色
초나라 귤나무에 비겨도 좋으리라 / 楚鄕橙橘好同論
두류산 아래로 거쳐서 갈 나의 발길 / 吾行會過頭流下
단풍 진 감나무 숲 산문(山門)에 끝없이 이어지리 / 無限霜林擁石門

이는 조선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가운데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谿谷集)》에 나오는 “감나무 숲(柿林)”이라는 시다. 첫 줄에 흰이슬 맺히는 이란 말은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의 가을날을 표현한 말로 이때 음기(陰氣)가 점점 성해지면서 이슬도 흰 색깔로 변한다고 한다.

▲ 오늘은 처서, 귀뚜라미와 모기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오늘은 24절기의 14번째인 처서(處暑)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부르지만 낱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에 처서 때는 여름 동안 습기에 눅눅해진 옷이나 책을 아직 남아있는 따가운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쬘 폭·포, :쬘 쇄)’를 했다.

또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해충들의 성화도 줄어드는 때다.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미친놈, 미친년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 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모기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낭군의 애(창자) 끊으려 가져가네.’라는 말은 남도지방에서 처서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단장(斷腸), 곧 애끊는 톱소리로 듣는다는 표현이 재미나다. 절기상 모기가 없어지고, 슬슬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때다. 이제 자연의 순리는 여름의 불(火)기운을 밀어내고 선선한 가을의 금(金)기운이 세상을 지배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