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위크앤조이> [일상탈출] 창녕 우포늪 트레킹
1억 4천만년 전 태고의 땅을 밟다 2012-10-18 [07: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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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이 뭐지? 누가 물었다. 일 년 내내 물이 고여,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닌 지역이 늪이다. 늪에서는 물이 뭍이 되어가는 과정이 끊임없이 진행된다. 경남 창녕군의 유어면과 이방면, 대합면 3개 면에 걸쳐 있는 우포늪은 1억 4천만 년 전에 태어나 태고의 신비를 지닌 생명의 보고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쓸모없다고 걸핏하면 공장과 농경지로 만들려는 아주 짧은 생각을 했다. 늪은 또 빠져나오기 힘든 상태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우포늪 주변을 걷는 여러 길 가운데 '목포(木浦) 탐방 길'을 걸으며 우포늪의 원시성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우포는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네 개의 늪으로 이뤄진다. 200만㎡에 달하는 우포늪 탐방은 걸어서 30분부터 3시간 이상 코스까지 있다. 이렇게 넓은 우포늪 주변은 자전거로 도는 방법도 괜찮겠다(자전거는 우포늪 생태관에서 대여해준다). 우리 일행은 이 가운데 목포를 탐방하는 2시간 코스를 선택했다. 목포 코스를 택한 이유는 우포늪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장재마을을 보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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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휘어진 우포늪 주변의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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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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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마을에서 주민이 감을 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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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
장재마을을 지나자 목포가 나타난다. 목포(木浦)의 다른 이름은 나무벌. 이 일대에는 예부터 소나무가 많았다. 목포는 배를 타고 건너가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가져오는 지역이었다. 나무 땔감을 많이 모을 수 있는 곳이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마을을 지나자 왕버들 군락지가 나타난다. 왕버들 군락지는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장소다. 해가 뜰 무렵이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새떼처럼 몰려든다. 그게 보기 싫었는지 왕버들 나무 몇 그루가 쓰러져 목포 쪽으로 누웠다. 아니다. 그만 지난 태풍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쓰러진 나무 위로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에서 자연의 신비를 실감한다.
S자로 꼬불꼬불 휘어진 길이 그림처럼 예쁘다. 하지만 웬일인지 길가에 있는 식물은 흙탕물이 범벅 되어 있다. 물이 길 위에까지 덮친 모양이다. 홍수로 높아진 늪의 수위는 길게는 10여 일 정도 지속되어 견디지 못하는 육상식물을 죽게 만든다. 어떤 식물은 홍수에 잘 견디고 다시 자란다. 일부는 이곳이 지겹다며(?) 하류로 이동하기도 한다. 홍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홍수는 늪 생태계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많은 생물이 새로 차지할 공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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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제방 앞 집의 명물인 불독. |
곧이어 우만 제방이 나타났다. 우만이라는 마을 때문에 우만 제방이라 불리게 되었단다. 1990년대에 우만 제방 부근에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려다 중단된 일이 있었다. 이후 시민단체와 정부가 지역 주민을 설득한 노력 끝에 1997년 7월 우포늪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 이듬해인 1998년 3월에는 물새 서식처로서 중요한 습지 보호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협약에 등록해 람사르습지가 되었다. 쓰레기 매립장의 중단은 우포늪을 보전하는 데 크게 기여한 셈이 되었다. 우포늪에 쓰레기 매립장, 생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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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배 한 척이 외롭게 정박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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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배는 사진 작가들이 좋아하는 피사체이다. |
우포늪을 지키는 '푸른우포사람들'(055-532-8989)은 바로 옆에 늪 체험장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주민이 고기잡이할 때 사용하는 쪽배와 뗏목을 타고 물고기, 우렁이 등을 잡으며 주민들의 삶과 정서를 체험할 수 있다. 문근영이 출연한 영화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촬영지 표지판이 붙어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한 여러 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우포늪에서 찍었다.
우포에서 아주 짧은 시간을 보냈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역설이다. 수억 년의 세월을 견뎌온 우포늪이 사랑해 달라, 지켜 달라고 외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늪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사진=블로거 '울이삐' (busanwhere.blog.me)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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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