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영남알프스 둘레길

[길을 걷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 <15> 에필로그

원태산 2011. 7. 7. 11:19

 

입맛따라 '길맛' 14개 구간 460리 6개월 답사, 한 장의 지도로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의 한 구절입니다. 지난 1월 칼바람을 맞으며 석남사 앞에서 신발끈을 묶던 둘레길 답사팀의 심정이 저랬습니다.


영남 산꾼들의 '영원한 노스탤지어'인 영남알프스에 둘레길을 연다고 했을 때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습니다. 지도 거리만 쳐도 150㎞가 훌쩍 넘었습니다. 영남알프스지붕 가지산을 비롯해 간월산, 재약산, 운문산, 문복산, 억산, 고헌산 등 1,000m가 넘는 고산준령을 어찌 걸어 넘을까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습니다.

몇 날 며칠을 지도를 들여다봤습니다. 위성지도를 뚫어져라 분석했습니다. 면사무소에서 부탁해 길잡이를 부탁하기도 했고, 마을 촌로를 붙잡고 길을 묻기도 했습니다. 염수봉, 오치령, 정승골을 넘는 날에는 등에 팥죽땀이 종일 쏟아졌습니다. 오지마을 바드리를 오를 때는 몇 시간씩 된비알과 씨름했습니다.

그렇게 앞만 보고 6개월을 걸었습니다. 울산시 울주군 땅에서 출발해 경남 양산, 밀양, 경북 청도, 경주를 돌아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애초 12개 구간, 답사거리는 160㎞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하나 걷다 보니 총 14개 구간, 답사거리만 해도 180.7㎞(460리)에 달합니다. 북한산, 금정산 둘레길처럼 하나의 산이 아닌 무려 10여 개의 산을 돌아왔습니다.

답사팀은 또 본보 최초로 14개 전 구간을 6㎜ 디지털 캠코더에 담아 기사마다 7~10분짜리 동영상도 제작해 인터넷에 게재했습니다. 좀 더 생생한 '길 멋'을 맛보시라는 배려에서입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영상을 보고 '길을 꼭 걸어보고 싶다'는 의견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길은 대체로 순했습니다. 고찰 석남사, 통도사, 운문사 주변을 거닐 때는 제법 운치가 있었습니다. 골짜기마다 숨은 전설과 설화는 둘레길을 정겹게 해 주었습니다. 배내골, 밀양호, 운문천을 보며 걸을 때는 골바람과 쪽빛 장관에 신이 나 힘든 줄 몰랐습니다. 영남알프스의 늠름한 마루금을 대할 때는 가슴 벅차기도 했습니다.

흙길, 오솔길, 논길, 숲길, 대나무 길, 사과나무 길, 마을 길, 아까시나무 길, 둑길, 시멘트길, 아스팔트 길 등. 길은 다양했습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에는 이 땅에서 가능한 모든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계절과 날씨, 걷는 사람의 재량에 따라 선택해 알맞게 걷는 길입니다. 입맛따라 '길 맛'을 느낄 수 있는 넉넉한 길이기도 합니다.

길은 열렸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많습니다. 묵은 길과 끊어진 길을 잇다 보니 매끄럽지 못한 구간도 있습니다. 딱딱한 아스팔트 길이나 인공미가 넘치는 길은 행정기관이 나서서 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460리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걷고 나니 멋진 지도 한 장이 탄생했습니다. 장맛비 그치고 폭양의 계절이 지나면 이 지도를 들고 다시 길을 걷고 싶습니다. 사과꽃 향기 나는 산내면 동천 둑길도 좋겠고요, 시원한 물줄기가 일품인 청도 동창천 물길도 괜찮겠습니다. 그때는 여러분도 함께 걸어 주시겠습니까?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